노인이 된다는 것. 누구나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는 일. 나이가 들고 신체가 노쇠해지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변화를 감지하게 되는 일. 자신이 더 이상 현역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지난하게 이어지는 인생을 살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일. 그리고 고독과 친해지는 일.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고독의 시간이 결국 내 몫이며 내가 겪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 그렇다면 나이 든 이들이 머무는 공간은 어떠할까.
인간에게 비극을 불러오는 원천은 운명처럼 찾아오는 죽음일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끝내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한, 고뇌와 비극에 잠길 수밖에 없다. 젊음과 물질적 풍요, 행복은 어디까지나 순간적인 마취 효과일 뿐,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음으로써 주인공이 되길 원한다. 또한 죽음의 폭력성 앞에 언제까지나 투쟁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을 뿐이다. 탑골공원에 모이는 이들은 버려지는 대상이 아니라 의식을 지닌 살아있는 인간군이다. 비록 사회적 퇴적 공간에 유기되었다 할지라도 특정한 의식의 덩이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도시는 자연이 제공하던 공간이 아니라, 호화로운 이미지의 공간들로 채워져서 거기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노인 세대들을 그 공간의 외각으로 밀어내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문명은 그들의 곁을 스쳐 빠르게 추월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추방은 가속화될 것이다. 노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가정에서 추방되었다. 노인들은 집에서도 쫓겨나고 거리에서도 쉴 곳이 없다. 노인 세대들은 생물학적인 죽음을 맞기 전에 이미 소멸을 경험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평균 수명은 남자 80세 여자 85세 정도로 광복 직전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울 만큼 연장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력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노인은 사회에서의 가치를 잃어간다. 2025년에는 초고령화 사회가 예정되어 있지만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분리수거 기준 연령은 약 55세에서 65세 사이다. 개인이 어떻게 소외되어 시장의 외곽으로 밀려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대상이 바로 노인들이다. 노인들은 상품 가치성을 잃어버리고 경쟁의 뒤안길을 서성인다. 이 책에서는 호화롭지만 제 기능을 상실한 노인 제도들을 비판하며, 그러한 제도들이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노인들을 몰아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필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실버 세대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 대신에 당장의 결핍을 채워 주는 데 급급한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에 문제의 본질이 숨어 있다고 비판한다. 노동의 기회를 상실함과 동시에 정의 실현의 주체성을 잃어버린 노인 세대는 노동권을 가진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노인 세대를 위한 한 끼의 끼니나 몇 조각의 떡, 혹은 한잔의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노동'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임산부가 될 수 있고, 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시간이 흘러 시장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교환 가치가 떨어진 노인이 될 수가 있다. 노인을 이 사회의 정거리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사회와 함께 가는 존재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좀 더 쾌적하고 의미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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